놀러 오세요, 제주의 숲 - Take 1

뒷덕지

 

  란 바다는 세 시간의 고단함을 충분히 위로해주었다. 사실 아이들을 가르친다는 게 (특히 내 전문분야가 아닌 단순 수학을 가르친다는 게) 이 정도로 힘들 줄 몰랐다. 아침 아홉 시 반부터 열두 시 반까지 내리 수업을 하면 정신이 몽롱해졌고, 그만큼 배도 허기졌다. 더군다나 출근할 때 내려온 오르막길을 다시 삼십 분 정도 걸어 올라간다는 건 참... 많은 고민을 하게 해주었다. 바로 집에 가야 할지... 아니면 동네를 더 구경하다 가야 할지...

 

  노동에 지친 나는 오르막길 대신 바닷가로 발걸음을 돌렸다. 언제 어디서든 바다를 찾을 수 있다는 건 제주도의 가장 큰 장점이 아닐까 생각하며.

 


 

놀러 오세요, 제주의 숲 - Take 1

 

 

  내가 일하는 동네는 ‘제주시 건입동’이다. 아마 제주를 관광한 사람들이라면 한 번쯤 들어본 장소일 것이다. 제주항이 있는 위치이기 때문에 특히 세월호 참사 이전 수학여행을 온 사람들은 한 번쯤 들렸겠지. 산지천을 끼고 도는 동네라 바닷가 냄새가 살짝 씩 풍긴다. 사실 조금만 걷는다면 배들이 즐비한 바다를 만날 수 있다. TMI일지 모르겠지만, 산지천이란 공간은 몇 년 전까지 사창가였다. 부둣가 옆이라는 특성상 오래된 여인숙 사이사이로 포주들이 돌아다녔다. 고등학교에 다니며 그 주변을 지날 때는 정말 무서웠다. 뻔뻔한 낯짝을 들이밀며 말을 거는 포주들. 지금은 재개발을 통해 매우 클-린 해졌다.

 

  오래된 풍경이 새롭게 바뀌니 의아하기도 했지만 신기했다. 일이 끝나면 새로 바뀐 산지천 주변을 구석구석 훑었다. 그중 발견한 공간을 소개한다.

 


 

 

1. 산지천 갤러리

 

 

  산지천 갤러리는 개발 이전 존재했던 여관 두 개 (녹수장, 금성장)을 합하여 만든 갤러리다. ‘원도심 살리기’라는 프로젝트에 따라 건설이 되었는데 주변과 참 잘 어울린다. 아무래도 갤러리라는 형식상 조금 어렵게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입장료가 무료라는 메리트가 있기에 부담 없이 들리는 걸 추천한다. 1층엔 카페가 있고, 2층부터 갤러리 전시가 시작이다. 현재는 ‘낮을 잇는 달'이라는 기획전시가 진행 중이다.

 

 

 

  낮달이란 무엇인가. 참 애매한 존재. 밤에 떠 있는 달이라면 환영받지만, 낮은 태양의 것이기에 존재 자체가 참 애매하다. 하지만 넓게 생각해 본다면 낮에서 밤으로 넘어가는 매개체로 생각할 수 있지 않을까? 미리 보기 서비스처럼 다음 섹션의 주인공을 살짝 소개하는 듯한? 낮달은 낮과 밤을 연결해주는 참 수줍은 친구이다.

 

 

 

  전시 공간도 마찬가지다. 제주와 타지를 잇는 항구가 있는 공간 산지천. 그 안에 두 개의 여관을 이은 산지천 갤러리. 주제와 공간이 잘 어울린다. 전시물들은 작품의 재질, 의미, 이야기를 연결하고 또 분리하며 시공간을 확장한다. 작가들은 이분법같이 정확히 나뉘지 않는 우리 삶을 표현한다. 3월 15일까지 진행하니 시간이 있다면 관람하시길.

 

 

 

 

산지천 갤러리

 

관람시간 : 10:00 - 18:00

이용요금 : 무료

휴관일정 : 매주 월, 설 추석 당일

 

 

 


 

2. 제주 책방

 

 

  처음엔 새로 생긴 카페인 줄 알았다. 아담한 한옥 카페가 반가워 들어갔더니 웬걸, 책방이란다. 하지만 책이 별로 없었다. 커피도 안 팔고 책도 안 팔고. 그럼 뭘까. 안내원에게 물어보니 쉬었다 가는 공간이라 답했다. 주변 카페에서 커피를 사 안에서 마시고 가란다. 이곳 역시 ‘원도심 살리기' 프로젝트의 한 부분이었다. 마침 텀블러에 마시다 남은 커피가 조금 있어 방에 들어갔다. 제주 책방은 ‘안거리'와 ‘밖거리'로 되어있었다.

 

 

 

자 TMI

  우선 제주 책방은 70여 년 된 고택이다. 원래는 허물 계획이었지만, 일본식 건축기법과 제주의 전통 가옥이 섞인 건물로 가치를 인정받아 책방으로 탈바꿈했다. 책방은 ‘안거리'와 ‘밖거리’로 나뉘어있는데, 제주는 옛날부터 집터에 건물 2개를 지어 큰 집을 결혼한 자식이, 작은 집을 시부모가 사용하게 했다. 애초에 따로 살게 하여 밥도 따로 먹었다고 한다.

 

 

 

  건물이 두 채니 작은 건물엔 책방을 큰 건물엔 사랑채를 만들어 누구나 사용하게 하였다. 공간대여를 통해 세미나 같은 프로그램도 진행한다. 낮에는 사람들이 별로 찾지 않아 거의 내 아지트로 활용했다. 산지천을 구경하다 커피 한잔을 해도 나쁘진 않을 듯하다.

 

 

제주 책방

이용시간 : 12:00 - 20:00

이용요금 : 무료

연중무휴 / 설 추석 당일 휴관

 

 

2020/02/14 - [뒷덕지] - 놀러 오세요, 제주의 숲 - Intro

2020/02/28 - [뒷덕지] - 놀러 오세요, 제주의 숲 - Take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