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러 오세요, 제주의 숲 - Intro

뒷덕지

 

 

 

 

 

대학 입학 이후 단 한 번도

한 달 이상 고향에 머문 적이 없었다.

 

 

 

  고향이 제주라는 특수성 때문일까? 타지에 있는 대학에 입학하는 순간, 나에게 고향 집은 그저 잠시 머무는 공간이 되었다. 집에서 두 번째로 컸던 내 방은 동생의 차지가 되었고, 나는 침대 하나 들어가면 꽉 차는 월세방을 갖게 되었다. 딱히 감흥은 없었다. 그냥 다들 그렇게 사니까.

 

 

 

 

 

 

  어느 겨울방학에 집을 내려갔다. 내가 학교에 다니던 사이 부모님이 큰 맘 먹고 리모델링을 하셨다. 자릴 비운 사이 우리 집의 역사는 크게 바뀌었다. 벽면 가득 있던 책들은 사촌들의 집들로 이사를 하였고, 옥색 문 들은 때를 벗긴 듯 새하얘져 있었다. 추억의 공간이 뒤집히자, 나는 진정한 외지인이 되었다.

  고향에 길게 내려가지 않은 이유는 혼자 사는 게 더 편해서 일지도 모른다. 냉랭한 집에 TV 소리로 겨우 온기를 집어넣으면서도 혼자만의 공간이 가져다주는 편안함을 즐겼다. 그러다 방학이 되고, 대학친구들로 채우던 헛헛함이 비워져야 제주에 들려 쉼터마냥 마음을 채우고 갔다.

 

  시간이 지나면서 일 년에 1~2주씩 제주에 적응해갔다. 그리고 지난해 겨울에 든 생각. 어쩌면... 내가 고향에 1주일 이상 머물 수 있을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걸 알았다. 타지에 자리를 잡은 친척들처럼 명절 때나 고향 땅을 밟게 되겠구나, 하고.

  대부분 지인은 나의 상황을 이야기하면 부러워했다. 집에 갈 때 마다 휴가를 가는 거냐는 둥, 멀어도 기분은 좋겠다는 둥. 사실 나는 별 느낌이 없었지만, 그런 얘기를 들으며 우쭐한 건 사실이었다.  겨울 동안의 일정을 정리하고 고향으로 떠났다. 딱히 정리할 일정이 있던 건 아니지만, 그냥 일부러 제주에 아르바이트를 잡고, 제주 친구들에게 약속하고, 일정을 만들고 정리했다.

 

 

 

 

 


 

막상 도착하니 고향은 불편함의 연속이었다.

 

 

첫째, 확 떨어진 자유도.

  본가에 들어오게 되면서 부모님과 정하지 않은 암묵적 통금이 생겼다. 새벽이 올 때쯤이면 자연스레 휴대전화를 확인하고 집으로 달려갔다. 조금은 어색하지만 아버지와 단둘이 TV를 보는 게 일과가 되었다. 점점 생활은 익숙해져 갔고 가족의 편안함과 안정감을 다시 알았다. 하지만 집을 나설 때마다 돌아올 시간을 걱정하는 건 여간 불편한 게 아니었다.

 

둘째, 뒤바뀐 여가활동.

  제주에서 여가활동을 기대한 건 헛수고였다. 미흡한 갤러리들과 심야 영화를 없애버린 영화관들. 어딜 가든지 부족한 교통편. 문화를 즐기던 나에겐 제주라는 공간이 조금은 작았다. 사실 차가 있다면 말이 달라지겠지만… 동생 차를 매번 빌릴 수는 없었기에. 결국 부모님을 따라 매주 주말 오름으로 떠났다.

 

 

셋째, 한정된 움직임.

  제주 구경을 혼자 했다고 하면, 대부분 사회 부적응자로 알지 않을까? 어쩔 수 없었다. 제주에서 나는 이도 저도 아닌 애매한 장기 관광객이었다. 얼마 안 되는 고향 친구들은 일이 있기에 늘 저녁에 약속을 잡았다. 난 겨우 구한 오전 아르바이트가 끝나면 대여섯 시간 동안 혼자 동네 구경을 하기 시작했다. 어디 멀리 가지도 못하고 걸어 다닐만한 곳까지만.

 

 

 

 

 

 

참 애매하게 부족한 것들투성이. 하지만 나를 만나는 친구들은 다들 얼굴이 좋아졌다며 칭찬이다.

 

앞으로 2주간 금요일마다 내가 만난 제주를 올리겠다.

제주 관광, 제주 맛집, 제주 볼거리 이런 게 아닌 그냥 내가 한 달 동안 만난 제주를.

 

 

 

 

 

2020/02/21 - [뒷덕지] - 놀러 오세요, 제주의 숲 - Take 1

2020/02/28 - [뒷덕지] - 놀러 오세요, 제주의 숲 - Take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