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둘러싼 모든 게 완벽했다 – 드라마 ‘부부의 세계’

뒷덕지

 

  매일 아침 우리 엄마가 이 마음이었을까. ‘이태원클라쓰’로 막을 내린 줄 알았던 불금의 드라마가 또다시 시작되었다. 고급진 막장드라마라는 수식어를 등에 지고 달리는 부부의 세계. 결혼도 못 해본 나는 왜 지선우(김희애)를 보며 가슴을 치고, 이태오(박해준) 개자식을 외치며, 이준영(전진서)을 혼내고 있는 걸까. 이 휘황찬란한 비혼유도 드라마를 보는 시청자들의 마음이 얼추 나와 비슷하다.

  덕분에 유튜브에는 시청자들 분노를 삭여줄 메이킹 필름이 꼬박꼬박 올라온다. 그걸 보고 나서야, 그래 이건 드라마였어 현실이 아니야’를 깨닫는 나란 사람. 여다경(한소희)이 선사한 고구마를 먹고 잠이 들지만 꿈속에서는 지선우의 사이다를 기대하는 나는야 가련한 시청자! 

 

  드라마를 보면서 항상 드는 생각은 ‘도대체 어디에 저런 부부가 존재할 수 있을까 하는 의심이다. 사랑한 게 죄는 아니라고 외치는 저 얍삽한 검은 머리 짐승을 내가 살면서 볼 수는 있을까. 상간녀 주제에 부끄러운 줄 모르고 고향에 돌아오는 사람이라니. 이혼을 위해 친구 남편을 꼬시는 여자라니!

 

  결국 이 모든 게 가능한 건 그들의 삶이 허구의 세계이기 때문이다. 만약 이게 드라마가 아니라 ‘기막힌 이야기 실제상황’이었다면…

 

아우 나 그날 앓아눕습니다!

 


 

 

 

  이 불륜드라마의 가장 매력적인 부분은 예측할 수 없는 상황이 매화마다 가득 담기는 것이다. 에피소드 한 편이 미니시리즈 하나와 맞먹는다. 거기에 김희애의 명연기는 극 중 지선우가 느끼는 오만가지 감정을 그대로 전달한다. 그녀의 흔들리는 동공, 어렴풋한 미소. 철저히 계산된 움직임들이 더 극을 자극적으로 만든다. 물론 구타유발자 이태오와 여다경의 콤비도 한몫을 한다.

 

  근데 왜 드라마를 보면 볼수록 나는 설명숙(채국희)과 고예림(박선영)에게 눈길이 가는 걸까. 재밌는 건 나와 같은 사람들이 한둘이 아니라는 것. (실제로 내 주변 사람들이 가장 싫어하는 캐릭터는 설명숙이다.)

 

  지선우와 이태오 그리고 여다경의 소용돌이를 볼 때면 약간의 거리감이 생긴다. 저렇게 고군분투 악을 쓰고 서로에게 덤비지만 어쨌든 그건 너희 이야기잖아요. 저런 일은 드라마에나 있을 이야기지, 나의 남편이 혹은 나의 아내가 저런 사람일 리가 없다는 믿음이 무의식적으로 깔려있다. 그러기에 지선우가 둘에게 당해도 다음을 기대하고, 이태오와 여다경의 무너짐에 통쾌해 하는 이유다. 

 

 

중요한 건 이태오 여다경보다 설명숙을 볼 때 더 뚜껑이 열린다는 거지.

어쩜 사람 탈을 쓰고 저럴 수 있는지! 근데 말이야, 저럴 수도 있는 거 아니야?

 


 

  설명숙을 볼 때마다 나는 점점 찝찝해진다. 그녀의 행동이 이해가 되기 때문이다. 둘 사이의 관계가 완전히 틀어지기 전 이중첩자 역을 하는 것도 이해가 되고, 부원장 자리를 탐하는 마음도 이해가 된다. 즉 내가 설명숙을 보면서 화가 나는 이유는, 그걸 이해하고 있는 나 자신에게 화가 나는 것이었다. 

 

  아직 결혼을 하지 않았기에 부부의 마음을 모르고, 아이가 없기에 이혼을 두려워하는 마음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누군가의 친구였다. 그러기에 설명숙의 마음을 이해하고 싶지 않아도 이해가 돼버린다. 열등감에 짓눌려 버린 자존감과 아는 척하기 싫던 나 자신의 기회주의자 면모를 그녀를 보며 깨닫는다. 그래서 그녀가 싫고 그래서 그녀에게 눈길이 간다. 

 

 

  고예림도 마찬가지다. 나의 짧은 생각으로는 몇천 번 이혼 도장을 찍어도 시원치 않을 텐데, 그걸 꾹 참고 버틴다니. 이미 이태오와 여다경의 외도를 모른척했다는 배신감은 사라진 지 오래다. 바람둥이 남편을 알면서도 모른척하는 고예림. 그녀의 지선우를 향한 질투는 자격지심에서 부러움으로 바뀌는 건 아닐까? 자신도 지선우처럼 분노로 관계를 처단하고 싶어도 속으로 참아야 하는 현실. 

  사랑해본 사람은 안다. 의심하며 집착하는 관계를 지속하는 게 얼마나 비참한지. 그녀가 남편 차에 위치추적장치를 붙여 놓은 이유도, 외도를 뻔히 알면서도 모른 척 관계를 지속하는 이유도 너무 잘 알기에. 그녀의 흔들리는 눈동자에 가슴 아픔을 느낀다. 

 


 

드라마를 드라마로만 보면 되는 데 왜 이렇게 감정이입이 되는지. 작품이 힘이 이렇게도 대단하다.

 

결국 메인 스토리는 지선우의 성장 과정이겠지만

나는 노선을 달리해 설명숙과 고예림의 행복을 빌겠다.

 

설명숙과 고예림에게서 자꾸 나를 발견하기에.

 


 

부부의 세계

 

20. 03. 27 ~ 20. 05. 16 

매주 금,토  밤 10시 50분~

16부작

 

부부의 세계 공식 홈페이지

 

위 모든 사진의 출처는 JTBC 공식 홈페이지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