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와 용인의 거리는 오조 오억 킬로미터

뒷덕지

안녕 나 뒷덕지. 코로나19로 고향에 발목 잡혀 유배생활을 하고 있지. 

 

동물의 숲과 넷플릭스로 하루하루 연명하며,

~ 백수 생활이 이렇게 외롭고 힘든 것인 가 

몸소 느끼고 있는 하루다. 

 

오늘은 그냥 투덜투덜 글을 써보겠다. 


 

  나는 집이 두개다. 하나는 제주도, 하나는 용인. 용인은 자취방이다. 지금 매 달 23일 마다 월세 몇 십 만원을 하늘에 뿌리고있다. 집이 거기 있는 데 왜 가질 못하나? 왜냐, 나는 명분이 없기에. 

 

  운 좋게 2월에 구입한 닌텐도 스위치의 뽕은 뽑을 대로 뽑았다. 학교에서 메인으로 진행하는 단편영화 촬영은 다음 학기로 미뤄졌다. 그렇다 나는 이제 할 일이 없다. 물론 이 생활이 나쁘지는 않다. 시간 맞춰 화상강의에 접속하면 내 출결이 해결되고, 할 일도 없어 꼬박꼬박 과제 하는 재미에 살고있는 이 삶. 하지만 하늘 위를 날아다니는 내 월세가 아까울 뿐이고 밤을 새우는 술자리가 부담스러울 뿐이고 아니 아니 거짓말 하지 말자. 더이상 나의 게으름을 숨길 수 없다.

 

  원래 일정대로라면 나는 용인에서 뭐 빠지게 로케이션을 구하고 있어야 한다. 하루하루 배달음식으로 버티고, 학교에서 롱패딩을 침낭 삼아 버티는 게 당연한 4월이어야 한다. (후후, 그런 것들이 나의 게으름을 한껏 붙잡아 두었지.) 

 

  하지만 현실은 집--집을 반복하며 가끔 나가 술에 진탕 취해 집에 돌아오는게 일상. 잦은 음주로 눈은 쉽게 풀려버리고 간 건강을 걱정하며 네이버에 밀크시슬을 검색한다. 그러고는 일어나 동물의 숲 무 값을 확인하고, 상점에 들려 물건을 고르고 섬을 꾸미다가 다시 눈을 붙이고. 원래 동물의 숲도 초반이 재미있을 뿐, 나머지는 무난한 하루하루 일상이다. 내 인생이 동물의 숲이야. 이벤트가 없어. 

 

 

 

  솔직히 용인에 갈 이유는 하나도 없다. (가서 할 일이라고는 도서산간 택배비가 아까워 자취방으로 주문한 물건들을 챙기는 일.) 개강은 1,2,3단계로 계속 미뤄졌다.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국가 재난 사태에 나는 적극적으로 따를 의향이 있다. 하지만 용인에 가는 건, 놀랍게도 내 집에 가는 것이다. 놀러가는 것이 아니다. 그래도 할 일도 없는 데 거길 왜 가냐.’는 아버지의 질문에 나는 답할 수가 없었다. 타당한 이유를 열심히 고민해 보지만 역시 갈 필요가 없다! 

 

  아 물론 내가 내 집에 가겠다는데 무슨 까닭이 필요하냐 말할 수 있지. 우리 부모님이랑 같이 안 살아봤으면 그럴 수 있다. 

 

  그러나 나는 그들의 걱정 가득한 시선을 십분 이해한다. 내가 금방이라도 코로나에 걸려 격리 당할 것을 걱정하는 그들의 눈빛을 나는 알고있다. 친구가 없어 집 밖으로 나갈 일이 없다는 걸 그들은 모른다. 내가 상상 이상으로 게으른 사람이란 걸 알 턱이 있나.

 

  차라리 거기서 살면 술은 덜 먹었을 텐데, 냉장고에 든 게 없으니 간식도 안 먹었을 텐데, 그럼 내 배가 이렇게 산만하게 부풀지는 않았을 텐데. 내가 산책하고 싶을 때 산책하고 자고 싶을 때 잘 수 있을 텐데, 그럼 루폴의 드레그레이스 시리즈 다 봤을 텐데. 나는 더이상 간섭이 싫어요! 이건 뭐 고등학생도 아니고 허허.

 

 

이 먼 거리를 움직일 이유가 얼른 나타났으면 좋겠다. 

그게 뭔지도 알고, 그게 나타나려면 꽤 시간이 걸린다는 것도 안다. 

 

제주에 벚꽃이 다 져버려 헛헛한 마음에 몇 자 적어본다. 

용인은 지금 벚꽃이 만개한 걸 알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