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 부캐의 시대 - 멀티 페르소나

뒷덕지

 

 

  대학생들이 매년 여름과 겨울에 꼭 해야 하는 것이 무엇일까. 짧은 휴가? 자기계발? 노노. 메이플스토리 버닝 시즌을 맞이해야 한다. 유저들은 모두 자신의 본캐를 위해 눈에 불을 켜고 달려든다. 물론 방학 한 달하고 셔터를 내리는 뉴비들고 있겠지만 (사실 버닝 이벤트는 그들을 위해 만든 것이다.) 메이플 고인물들은 유니온 스킬을 위해 완벽한 부 캐릭터(이하 부캐)를 생성한다. 자신의 본캐를 위해 시간과 공을 들여 완벽한 그라운드를 형성하는 것이다.

 

 

단순 온라인 RPG에만 이런 ‘부캐’들이 존재하는 게 아니다.

그렇다. 오늘은 이야기할 내용은
'부캐릭터 - 멀티 페르소나'의 등장이다.

 


 

 

 

 

태초에 헤르만 헤세가 있었다.

 

  혹시 ‘데미안’을 읽으셨나요? 에이, 설민석 강사의 프로그램을 본 걸 읽은 거라 착각하진 말자. (안 읽은 분들은 꼭 한 번 읽기를 추천한다. 새는 알을 깨고 나온다는 그 책 맞다.)

 

  데미안의 작가는 ‘헤르만 헤세'. 하지만 그는 데미안을 자신의 이름으로 출판하지 않았다. 데미안 초고의 작가는 ‘에밀 싱클레어'로 데미안 속 주인공의 이름과 같다. 데미안을 집필하기 전, 이미 작가로 성공했던 그는 자신의 유명세의 영향이 아닌 작품 그 자체가 평가받길 원했다. 그러기에 헤르만 헤세라는 이름을 버리고 에밀 싱클레어라는 신인 작가의 길을 택했다.

 

  더 크게 보자면 헤르만 헤세의 작품의 방향이 바뀌었다. 데미안 집필 이전의 책 ‘청춘은 아름다워'나 ‘수레바퀴 아래서'에서 보여주던 서정적인 풍을 벗어나, 에밀 싱클레어라는 필명으로 출판한 ‘데미안’부터는 인간의 고뇌를 그리기 시작했다.

 

  아무튼 결과는 대성공! 후에 문체 비교로 두 사람이 같은 작가라는 게 밝혀지자, 데미안은 더더욱 성공했다. 대작가가 신인 작가인 척을 하다니. 어찌 보면 고인물의 훼방일 수도 있지만 그만큼 작품에 대해 자부심을 느꼈다는 것! 인정합니다! (썰에 의하면 데미안으로 에밀 싱클레어는 신인 작가상을 수상 하였고, 헤르만 헤세가 그 상을 반납했다고 한다.)

 


 

 

 

 

핑크 복면의 사나이, 마미손

 

  2018년 쇼미더머니에 참 독특한 참가자가 등장한다. 핑크 복면을 쓰고 자신을 마미손이라 칭하는 처음 보는 래퍼. 차마 머리에 고무장갑을 쓸 수는 없었겠지…. 아무튼! 그의 딕션과 목소리가 기성 가수 메드클라운과 너무 똑같아서 화제가 되었다. 물론 2차 경연에서 랩을 절어 불구덩이로 떨어졌지만. 그가 진짜 매드클라운이었다면 그럴 리가 없었을 거다. 그가 공연한 ‘탭댄스'라는 곡은 개인적으로 좀 소름 끼쳤다.

 

  하지만 슬픔도 잠시! 탈락의 아픔을 승화한 ‘소년점프'라는 노래로 음원 순위를 모두 석권했다. 하다못해 그가 탈락한 쇼미더머니 결승 공연을 할 정도였으니, 인기가 대단했다. 실제로 노래가 정말 좋아서 거리를 걸을 때마다 들었던 기억이 있다. 한 가지 무서운 점은 소년점프의 저작권은 매드클라운이 가지고 있는 것. 비로소 ‘마미손 = 매드클라운’이 정설이 되었다. 아 물론 매드클라운은 아직도 이 상황을 부정하고 있다. 마미손이 매드클라운이란 사실을 매드클라운과 마미손 빼고 다 알게 되었다.

 

  그 두 명이 같은 사람이라 하지만 추구하는 방향성은 확실히 다르다. 매드클라운 역시 정형화된 자신의 스타일을 벗어나기 위해 마미손이란 부캐를 만든 것이다. 자신이 하던 음악 스타일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새로운 인물을 탄생시켜 또 다른 방법으로 도전하는 래퍼. 역시 부캐를 키울 땐 초보인 척 하는 게 꿀잼 아니겠는가!

 


 

 

 

 

신인가수 유산슬의 수상을 축하합니다.

 

  2019년 MBC 신인상의 주인공, 현세대 트로트 열풍의 주역! 유산슬. 새파란 신인이 대한민국을 휩쓸었다. 출연료 30만 원으로 아직 앳된 신인이지만 그를 찾는 곳이 한두 곳이 아니다. 합정역 5번 출구를 핫플레이스로 만들며 사람들의 마음을 싹 다 갈아엎는 그.

 

  그 역시 김태호 PD가 프로그램 ‘놀면 뭐하니?’에서 탄생시킨 코미디언 유재석의 부캐다. 재미삼아 시작한 프로젝트가 또 다른 캐릭터를 만들었다. 이미 유재석은 ‘무한도전'과 ‘런닝맨'으로 국민 MC라는 타이틀을 얻었다. 매년 연예대상을 휩쓸던 그는 더는 올라갈 곳이 없었다. 그러기에 이번 유산슬로의 데뷔가 매력적이다. 국민 MC가 이렇게 노래를 잘했다니. ‘역시 유재석이다.’ 혹은 ‘유재석의 새로운 면모이다.’ 하며 시청자들의 호평이 이어졌다.

 

  하기 싫다고 불만을 내뱉지만 막상 시작하면 너무 잘해서 문제가 되는 그. 원래 부캐는 하나만 만들면 안 되는 거 아시죠? 유산슬, 유르페우스 그 이후도 기다릴게요!

 


 

 

 

 

 

  대’부캐'의 시대는 이제야 시작이다. 배우 박정민과 작가 언희. 코미디언 추대엽과 표절가수 카피츄. 코미디언 박나래와 교포 조지나. 이미 본캐를 잠시 넣어두고 부캐를 키우는 인물들이 늘어나고 있다.

 

  비단 연예인 이야기가 아니다. SNS 시대가 도래하며 우리도 다양한 부캐를 키우기 시작했다. 상황에 맞추어 알맞은 가면을 쓰며 행동하는 사람들. 멀티 페르소나의 본격적 등장이다. 그것이 위 소개된 인물처럼 긍정적 방향이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많다.

 

  다시 게임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부캐를 만드는 이유가 무엇이었나. 본캐를 더욱 빛나게 하기 위해서였다. 이 말은 본캐 즉 ‘메인캐릭터’의 위치가 확실하다는 것이다. 메인 캐릭터가 자리를 이미 잘 잡고 있기에 그 자리에서 더욱 업그레이드 하기 위해 부캐를 키우는 것이다. 부캐가 본캐를 위협해버리는 주객전도의 상황이 생겨서는 안 된다.

 

  우리 모두 멀티 페르소나 시대의 삶을 살고 있다. 각각의 무드에 맞춰 가면을 쓰는 게 일상이다. 그 가면에 익숙해져 버려 벗는 방법을 까먹지 않길 바란다. 잊지 말자 부캐는 본캐를 돋보이기 위해 존재한다는 걸.

 

 

멀티 페르소나 : ‘다중적 자아’라는 뜻으로, 개인이 상황에 맞게 다른 사람으로 변신하여 다양한 정체성을 표현하는 것을 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