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과농장에 한 걸음 더 - 아이패드를 샀습니다.

뒷덕지

 

 

며칠 전 앞덕지의 단언, 아이패드를 사지 않겠습니다.

 

<촌스러움에 대하여 1 - 아이패드를 사지 않겠습니다, 앞덕지>

 

허나 이걸 어쩌나, 나는 사버렸다. 정확히 선물을 받은 거지만. 선물 받지 못했어도 구입을 하려 했기에~

 


 

  나는 앞덕지와 달리 디지털을 좋아하다 못해 사랑한다. 내 삶 자체에 전자파가 그득그득 묻어있다. ‘Z플립’ 같은 신상을 바로 겟하는 재력의 소유자는 아니지만 스마트폰, E-book 리더기, 스피커, 게임기 등등 현대문물이 선사하는 즐거움을 가능한 한 많이 누리려 한다. 이번 아이패드에도 그 욕망이 한몫을 했다. 아이패드 Air를 선물받고, 더 잘 사용하기위해 애플팬슬을 주문했다. 막대기하나가 뭐 그리 비싼지...

 

  아이패드를 구매했다 하자 한 친구는 내게 가장 좋은 앱을 추천해줬다. ‘Youtube Red’. 아마 아이패드가 있어도 제대로 활용할 수 없을 거란 말이겠지? 솔직히 인정한다. 이북 리더기를 사도 독서시간은 크게 변하지 않았고, 게임기를 사도 밤새 게임을 한 적은 없으니. 더군다나 맥북을 사용하는 나는 아이패드를 통해 생산성 부분에서 영향이 크지 않을 게 분명하다. 하지만 아이패드 그러니까 태블릿을 구매한 순간 내 삶이 바뀌었다.

 

 

 

  늘 거북이의 삶을 살던 나. 느린 거 말고, 등딱지. 학기 내내 백팩과 나는 한 몸이었다. 검정 백팩 한가득 이것저것. 일화를 소개하자면 미용실에서 머리를 자르려 가방을 벗는데, 받아주던 직원이 ‘어훅' 소리를 내며 내 가방과 함께 주저앉았다. 솔직히 내 가방, 진짜 무겁다.

  노트북, 외장 하드, 충전기 세트는 기본이며 미니멀 하지 못한 성격 탓에 노트, 다이어리, 필통은 덤. 거기에 안경, 지갑, 티슈 어휴 나열하기도 귀찮다. 이래서 내가 키가 안 크는 건가. 지하철이나 버스를 탈 때마다 내 가방은 눈치를 봐야 했고, 앞으로 맨다고 해도 그 용량이 어디 가지 않기에, 앞에 앉으신 분들께 부담감을 선사했다. 덕분에 자취방 벽에 걸린 내 에코백들은 장 보러 갈 때가 아니면 늘 장식용이었다.

  하지만 아이패드는 위 모든 걸 대신해줬다. 이제 내 가방에는 아이패드, 아이팬슬. 아, 라이트 한 삶을 사는 게 이렇게 쉬웠다니!

 


  물론 필요하다면 노트북을 꺼내고, 가져가야 한다면 노트와 책을 챙긴다. 중요한 건 선택지가 있다는 것. 별생각 없이 가방 가득 들고 다니던 것들을 오늘 꼭 필요한지 고민할 기회. 나의 하루를 대충이라도 예상해 볼 수 있다. 내가 오늘 뭘 해야 하지? 어딜 가야 하지? 아 오늘은 이런 것들을 해야 하니 이게 필요하겠군. 오늘은 어딜 가야 하니 이걸 들고가야겠군. 미니멀 하지 못한 나에게 아이패드는 맥시멈을 안겨줬다.

 

 

  타이핑과 손글씨의 차이도 크다. 평소 무언가를 읽을 때 늘 적는 버릇이 있는 나는 항상 메모한다. 수업 중엔 요약을 하고 책을 읽을 때, 특히 문학을 읽을 때! 항상 등장인물들 이름을 정확하게 써 놓는다. (내가 이렇다. 책을 읽으면서 자꾸 등장인물 이름을 까먹는다. 수능 공부할 때부터 등장인물 족보 정리하는 게 버릇이다) 근데 문제가…. 나중에 타이핑한 메모를 볼 때면 이걸 왜 적었는지를 잊는다. 그렇게 열심히 키보드를 두드려 놓고는, 까먹어버린다.

 

  이때 필요한 게 손글씨. 무의식적인 나의 감각이 투여된 손글씨. 글자의 크기와 굵기. 정자인지 휘갈겼는지. 손글씨를 보면 글을 적던 그때의 감각이 고스란히 전달된다. 내가 이 구절에서 무언가를 느꼈구나. 이 내용은 별로 중요하지 않구나. 요건 꼭 기억해야 하는구나. 아이패드와 함께 나는 더 직관적인 생활을 하게 되었다.

 

 

 

  내가 페이퍼리스의 삶을 살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대부분의 구입자들 목표가 페이퍼리스라고 해도 이놈의 ‘혹시나'란 성격 탓에 책상엔 파일철이며 A4용지며 가득이다. 그러나 분명한 건 아이패드는 내 삶의 패턴에 변화를 주었다는 것.

 

  이번에 아이패드를 사면서 그동안 절절히 앓았던 아이패드 병이 치료됐는데, 아마 그동안 이런 변화를 원했나 보다. 글의 중간중간 어폐가 있다는 걸 안다. 아마 300g짜리 노트북이 나온다면, 난 다시 그걸 살 테고, 11인치까지 펼칠 수 있지만 얇은 휴대전화가 나온다면, 난 그걸 또 사들일 테지. 하나에 만족해 버리면 재미없는 거 아니겠는가. 이렇게 새로운 걸 접하고 그에 맞춰 변하는 내 삶이 신기할 뿐.